본문 바로가기

소소한 일상들

090217 산행:山行き

 09년02월17일. 전날 부탁받은 음식 준비를 마무리 한 다음, 카메라를 들고 기숙사를 나섰다. 모임 장소까지는 버스로 이동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무료함에 기분전환을 하고자 혼자서 산을 넘어서 가기로 정했기 때문이다.


 사택들 옆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올라가면,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학교 자체가 외진 곳에 있어 외부인이 잘 오지 않기도 하고 산을 넘어가 봐야 역시 외진 곳에 있는 댐이 나올 뿐이라 이 길을 이용해서 산에 들어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끔 멧돼지 사냥을 하려는 사람들이나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 못해 걸어서 댐에 가려는 나 같은 사람만이 이용한다는 이야기.


 입구에서 10여 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아스팔트 길은 끊어지고 비포장의 산길이 이어진다. 이미 버스는 떠났고, 약속 장소까지 가지 않으면 준비만 하고 음식은 먹지 못한다는 상황. 인류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면 항상 몸이 고달프다.


 매번 아는 사람들에게 '시골 외지에 처박혀서 (돈 아끼려고)채소밭 일궈 먹고 살아요.'라고 말해도 믿질 않는다. 언젠가 최상의 애인님이 잠시 들려 학교 주변을 둘러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이런 외지라면 안심이다.'라는 말을 하며 돌아갈 정도로 이곳은 오지다. 군 생활을 했던 강원도 화천 근방의 산골과 맞먹을 정도로 꿈지럭거리거나 튀거나 날아다니는 것들이 많은 데다가 가장 가까운 편의점이 걸어서 30분 거리라면 이미 상황 종료. (그나마도 2년 전엔 없었다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산에 들어서면서 귀에 꼽았던 이어폰을 빼고 조심하며 걸어갔다. 독이 있는 꿈지럭거리거나 기거나 날아다니는 것들은 아직 나올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해도, 마리당 20만 엔이라는 무식한 산돼지들은 조심해야 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산돼지로 오인당해 외지에서 객사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 이 날은 별로 들리지 않았지만, 농한기가 되면서 총소리와 돼지 멱따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학교에 처음 도착해서 들은 주의사항 중 한 가지가 '위험하니 웬만하면 산속에 들어가지 마세요.'였을 정도로 긴장감이 팍팍 느껴지는 동네다.


 사실 예전에 낚시 가방을 둘러매고 모기에게 헌혈 당하며 댐에 다녀왔을 때 맘에 걸렸던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무언가를 사진에 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교직원 회의 결과를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무료함도 달래고자 산을 올랐다. 유학생 감면금과 장학금을 동시에 받지 못한다면 결론은 귀국, 사진을 담을 기회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겨울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서인지 결국 마음에 와 닿는 사진을 담지는 못했다. 대신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버려진 쓰레기들은 많이 찾아냈다. 보이는 곳은 깨끗하게 유지해도 남에게 보이지 않는 곳까지 신경 쓰지는 않는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해준다. 가끔 하게 되는 마을의 쓰레기 제로(zero) 운동도 여기까지 손이 닿지는 않겠지. 뼈만 남은 자동차가 그냥 버려진 것인지 사고가 나고 방치된 것인지 궁금했지만, 의문에 답해줄 사람이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40분여 만에 고개를 넘었다. 고개를 넘어 내려가면 금방 댐이 나오기에 산기슭에 해가 걸려 있어도 걱정되지는 않았다. 저번 달만 해도 오후 4시 정도에 노을을 볼 수 있었는데, 해가 많이 길어졌다. 올해도 학교 주변에서 벚꽃 구경을 할 수 있을까.



 결국, 1시간도 걸리지 않아 산을 넘을 수 있었다. 산에서 내려와서 출입 금지된 다리 대신 짧은 터널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5분 정도만 걸으면 댐에 도착한다.


 파티가 시작되었는지 아직 거리가 꽤 남았는데도 웃음소리가 들려왔기에, 뒤를 돌아 마지막으로 한 장을 담고 걸음을 서둘렀다. 좀 더 파릇파릇한 생명력이 넘치는 사진을 담을 기회가 있을지는 곧 알게 된다. 이 한 장이 마지막으로 이곳을 담은 사진이 되지 않길.

'소소한 일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090225 배웅:見送り  (0) 2009.02.25
090221 산책:散歩  (2) 2009.02.21
090214 산책:散歩  (4) 2009.02.14
090131 눈:雪  (4) 2009.02.01
090124 생일:誕生日  (2) 2009.01.24